지난 21편의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나는 1인 가구의 좁은 방구석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실패와 곰팡이, 벌레, 그리고 얄팍한 상술에 속아 넘어가는 초보자들의 환상을 가차 없이 짓밟아왔다. 썩어가는 뿌리와 널뛰는 화학 수치들을 냉정하게 해부하는 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피 말리는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왜 굳이 그 좁은 방 안에서 식물을 키우는 겁니까?" 오늘 22편에서는 그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 한다. 온갖 독설과 경고 이면에 숨겨져 있던, 그 지독한 환경 통제를 기어코 이뤄낸 자들만이 맛볼 수 있는 플랜테크의 가장 찬란하고 긍정적인 빛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다.
거짓된 위로를 버린 자에게 찾아오는 '루틴(Routine)의 구원'
식물이 내 우울함을 달래줄 것이라는 수동적인 기대를 버리고, 내가 직접 물리적 환경을 조작하는 '관리자'의 위치로 올라서는 순간, 1인 가구의 삶에는 놀라운 심리적 변화가 찾아온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가장 먼저 서큘레이터의 바람을 확인하고, 수조의 뚜껑을 열어 양액의 EC(전기전도도)와 pH(산성도)를 측정하는 10분간의 짧은 작업. 초보 시절에는 이 과정이 끔찍한 막노동처럼 느껴졌지만, 시스템의 원리를 완벽하게 깨우치고 난 뒤 이 반복적인 행위는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하고 성스러운 '종교적 의식'이자 명상으로 변모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직장에서는 아무리 야근을 하며 노력해도 상사의 변덕이나 회사의 사정에 따라 내 성과가 부당하게 깎여나가고,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재화는 내 통제 범위 밖의 거시 경제에 의해 미친 듯이 요동친다. 인간관계 역시 내가 정성을 쏟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 방 한구석에서 윙윙거리는 이 1평짜리 수경재배 시스템은 다르다. 이 녀석들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어제 투입한 질소와 칼슘의 정확한 비율은, 오늘 아침 식물의 잎사귀가 1mm 더 넓어지고 두꺼워지는 압도적으로 정직한 결과값으로 즉각 환산된다. 내가 온도를 1도 낮추기 위해 흘린 땀방울은, 그 이튿날 하얗고 눈부시게 뻗어 나가는 잔뿌리의 폭발적인 생장력으로 온전히 보상받는다. 원인과 결과가 100% 일치하는 이 완벽한 인과율의 세계. 내 노력과 정성이 단 한 방울도 휘발되지 않고 눈앞의 생명체에 고스란히 맺히는 것을 매일 아침 목격하는 경험은, 상처받고 고갈된 1인 가구의 멘탈을 치유하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긍정적인 항우울제다. 루틴은 나를 얽매는 족쇄가 아니라, 혼돈의 세상 속에서 내 중심을 굳건히 잡아주는 닻(Anchor)이다.
| 구분 | 가짜 힐링 (감성적 접근) | 진짜 힐링 (통제적 접근) |
|---|---|---|
| 식물과의 관계 | 수동적인 위로와 동정의 대상 | 내가 창조한 환경의 정직한 결과물 |
| 심리적 보상 | 식물이 시들면 우울증이 동반 악화됨 | 통제감을 통한 압도적인 '자아 효능감' 획득 |
| 치유의 메커니즘 | 무책임한 방치 속에서 시각적 쾌감만 소비 | 예측 가능한 인과율의 세계 속에서 안정을 찾음 |
1mm 씨앗이 품고 있는 폭발적인 생명력의 경이로움
수경재배의 한계를 명확히 긋고, 과도한 욕심을 버린 채 단 한 품종의 로메인 상추에만 모든 환경을 최적화시켰던 어느 봄날을 기억한다. 젖은 스펀지 위에 핀셋으로 올려둔 1mm 남짓한 그 보잘것없는 씨앗 한 알. 바람 불면 날아갈 듯 작고 말라 비틀어졌던 그 갈색 점이, 내가 세팅해 준 완벽한 습도와 온도를 만나 단 48시간 만에 껍질을 찢고 하얀 꼬리(유근)를 내밀던 순간의 전율은 수백 번을 겪어도 결코 무뎌지지 않는다.
환경이 통제된 상태에서 식물이 보여주는 생명력은 연약하고 보호해 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두려울 정도로 맹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 그 자체다. 오직 물과 무기염류, 그리고 LED의 빛만으로 그 작은 씨앗은 매일 자신의 부피를 두 배씩 불려 나간다. 처음엔 바늘구멍만 했던 연두색 떡잎이, 불과 3주가 지나면 어른의 양손으로도 다 가려지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두툼한 짙은 녹색의 이파리로 융단폭격을 가하듯 선반을 뒤덮는다. 식물은 결코 가만히 서 있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캄캄한 수조 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과 영토 전쟁을 벌이고, 조명의 빛을 1%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이파리의 각도를 비틀며 치열하게 세포를 분열하는 맹수와 같다.
우리는 1인 가구의 좁고 척박한 밀실에서, 먼지 같은 씨앗 하나가 우주의 섭리를 담은 거대한 생명체로 확장되는 그 마법 같은 기적을 맨 앞줄에서 직관하는 특권을 누린다. 내가 부여한 환경적 무대 위에서, 식물이 스스로 가진 유전적 잠재력을 200% 폭발시키며 춤을 추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 이것은 단순히 "파테크로 돈을 아꼈다"는 얄팍한 가성비를 아득히 뛰어넘어, 인간이 생명을 잉태하고 보존하는 창조적 과정에 기여했다는 엄청난 자아 효능감(Self-efficacy)을 선사한다.
방구석 1평에 창조해 낸,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안전한 나의 우주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를 반기는 것은 더 이상 차갑고 캄캄한 시멘트 상자가 아니다. 방 한구석, 내가 설계한 파이프와 수조를 따라 맑은 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고출력 LED 조명이 뿜어내는 따뜻하고 찬란한 인공 태양 아래서 수십 포기의 식물들이 일제히 잎을 활짝 벌린 채 생명의 숨결을 내뿜고 있는 풍경. 그것은 흡사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우주선 안에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완벽한 생태계 테라포밍(Terraforming) 기지를 마주하는 것과 같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 곰팡이와 해충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지독한 공부와 세척 노동으로 이겨낸 자만이 이 찬란한 '안전지대'를 소유할 자격이 있다. 밖에는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도, 이 1평 남짓한 나의 선반 위는 1년 365일 언제나 가장 완벽하고 쾌적한 봄날의 기후를 유지한다. 내가 이 공간의 신(神)이자, 날씨를 관장하는 통제자이기 때문이다.
플랜테크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씁쓸한 기계 부품이나 독한 화학 약품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간섭 없이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룩해 낸 '생명의 오아시스'다. 이 작은 우주 속에서 하얗게 진동하는 뿌리의 박동을 지켜보며,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작지만 단단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자연의 변덕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학과 이성이라는 도구로 척박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 생명의 기적을 피워낸 방구석 농부들이여. 당신들이 흘린 땀과 독한 락스 냄새의 끝에는, 세상 그 어떤 화려한 인테리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뜨겁고 찬란한 초록빛 구원이 기다리고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마라.
📝 니우맘의 노트
모질고 차가운 비판의 칼날을 잠시 거두고, 오늘은 내가 왜 이토록 지독하게 수경재배에 매달려 왔는지 그 마음속 깊은 곳의 온도를 꺼내어 보았습니다. 수많은 실패로 인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아침마다 나를 향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드는 그 생명력 넘치는 잎사귀들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뜨거운 덩어리가 가슴을 치고 올라오곤 했습니다. 통제와 노동이라는 험난한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그 너머에는 반드시 내 노력에 100% 화답해 주는 경이로운 생명의 춤사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의 거친 칼럼들이 당신을 지치게 한 것이 아니라, 이 찬란한 기적의 무대로 이끌기 위한 단단한 예방주사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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